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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환 목사 별세, 민중을 위한 삶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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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신 문동환 목사님이 9일 오후 별세 하셨습니다. 문동환 목사님은 자신을 떠돌이라고 자처했으며 지난 2009년 나온 자서전의 부제 또한 <떠돌이 목자의 노래>였었습니다.



문동환 목사님의 떠돌이는 성서에서 하느님이 고향에서 밀려난 떠돌이들을 부르셨다라는 대목을 연상하게 하며 대한민국에서는 이 떠돌이를 민중이라고 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동환 목사님은 일제강점기였던 1921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는데 이곳에서는 형 문익환 목사와 윤동주 시인 등이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대한민국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헌신했던 고 문익환 목사님의 동생으로 문동환 목사님 또한 한평생을 민주주의를 위해 그리고 민중들의 삶을 위해 행동했던 목회자이자 신학자이며  사회운동가였습니다.


문동환 목사님을 이야기 할 때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민중신학입니다. 기독교 본래의 정신에서 멀어진 한국 교회를 비판하는 차원을 넘어 노동자들을 비롯한 민중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신학이 되어야 한다고 민중신학을 그 기반으로 하셨습니다.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으로 박독재 투쟁에 앞장섰기에 교수로 재직하던 학교에서 해직이 되었고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었습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긴급조치 철폐와 의회정치의 회복을 오구하여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한 혐의로 감옥에 가기도 했었습니다.


한때 현실 정치에도 발을 디뎠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민주당에 들어가 수석부총재를 역임하기도 했었고 국회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가 열릴 때에는 그 위원장으로 활약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고령의 나이에 현장에서 은퇴를 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설교 등을 통해 민중을 이야기 했고 자본주의 산업 문명의 사회부조리에 대해서도 계속 문제제기를 하는 등 죽음에 이르는 그 순간 까지도 민중을 위한 삶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떠돌이라 부르며 그 떠돌이들 속에서, 민중 속에서 민중을 위한 삶을 실천하셨던 문동환 목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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